[선교편지] 권혜영 선교사 - 온두라스
- 작성자 : admin
- 11-08-07 21:00
감사와 찬양
일주일 동안의 한국에서의 시간은 가장 짧고도 가장 의미 있는 놀라운 주님과의 모험이었습니다.
7월 6일 온두라스를 떠나 8일 금요일 밤 인천 공항에 도착, 사랑하는 이들의 반가운 얼굴을 벳지가 먼저 발견했건만 피로로 눈이 선명하게 보이지 않던 저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 버리는 바람에 뒤늦게야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치유의 손길로 몸이 완전히 나아 날아갈 듯 기쁨으로 가득찬 저의 모습은 옆에서 지켜보던 벳지를 더욱 행복하게 했지요. 두 달간의 뼈를 부서뜨리는 듯한 고통이 갑자기 사라지니 제 입은 귀에까지 걸려 웃음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 스스로도 어떻게 제어할 수 없을 만큼. 정말 질병으로 10 킬로그램의 살이 빠지지 않았다면 엄한 꾀병을 부린 거라며 많은 이들에게 야단을 들었을 테지요.
영상 통화로 한 번 얼굴을 볼 수 있었던 미자 언니는 인질로 잡혀간 여인이 영상으로 구원을 요청하는 얼굴 같았다고 하더군요. 이야기 하다가 먼저 눈물을 흘려버릴 정도로... 6월 말, 식구들과 조용히 생일을 맞으며 벳지가 제게 생일 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으냐고 했을 때, 함께 여행을 하고 싶다고 했지요. 하지만 주님께서 한국까지 보내시리라곤 당시엔 꿈도 못 꾸었지요. 세상 사람들에겐 경제적으로 또 시간적으로 우둔한 것처럼 보여지는 2주간의 여행은 또 다른 주님의 엉뚱하고도 가슴 벅차는 아름다운 경험이었습니다. “가서 해야 할 일이 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 중에 죽어가는 이가 있다. 특히 아버지가 나를 필요로 한다...물질은 염려 말라, 내가 차고 넘치도록 부어 주겠노라”
주님의 여종의 예언은 하나도 틀림이 없었습니다. 밤에 도착해 휴식을 취한 후 새벽 기도로 하루를 열고 주님께서 짧은 일주일의 시간을 놀라운 만남으로 채우시고 축복의 통로가 되도록 인도하시길 기도했지요. 집에서 선물을 기다릴 아이들을 생각해 남대문을 다니며 보물 찾기를 하고, 그 동안 있었던 이야기들을 나누고 기도의 제목들을 나누며 느긋한 하루를 보내고 아침 1부 예배를 온누리에서 드리며 우리의 마음에 들려주시는 말씀으로 인해 울며 찬양하고, 단기 선교 팀들의 티셔츠를 사면서 청년들의 발걸음에 축복을 빌어주는 기도를 했습니다. 2부는 새 생명 교회에 가서 그 동안 울며 저를 위해 중보 기도한 사랑하는 교회 가족들께 감사를 드리며 점심 식사를 함께 한 후 오후 모임을 위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안드레 선교는 대학부 때부터 제 돌아가신 영적 어머니께서 졸업한 저희들에게 세계 선교와 선교사 후원을 위해 세우신 모임이고 아직까지 선교회로 법적 모양새를 갖추진 않았지만 각자 교회를 다니며 토요일 마다 선교사들을 위해 함께 기도하고 여러 선교사들을 후원하는 또 주님이 허락하시면 단기 선교를 통해 위로와 도전을 주는 그러한 귀한 지체들의 모임입니다. 영적 어머니는 97년에 돌아가셨지만 핵심 멤버들은 선교의 비전을 잃지 않고 저 또한 그 분의 기도와 격려로 선교사로 온두라스에 오게 되었지요. 안드레 중 첫 번째 선교사가 나온 것이지요. 그 후 많은 세월이 흘러 이제 주님은 새로운 단계로 올리시려고 리더를 오랫동안 사막을 통과하게 하셨지요. 참 자아가 점점 죽어져 가는 시간이었지요. 이것이 나와 가장 가까운 이의 죽어가는 모습이었답니다. 곧이 곧 대로 육 적으로 받아들인 예언은 영적인 것들을 의미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물론 저희 가정은 모두 건강하답니다. 감사하기만 합니다. 앞으로 새로운 단계로의 도약을 위해 완전히 무릎을 꿇은 리더의 모습과 두 달간 뼈를 깎는 고통 속에서 침대에서 주님께 울며 도움을 요청하던 저의 모습은 너무나 흡사 했습니다. 앞으로의 일이 너무나 기대됩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단련된 주님의 군사로서의 저희들을 상상해봅니다.
월요일 아침 일찍 건강 검진 센터에서 각종 검사를 한 후 포천 참나무 비전학교를 방문했습니다. 사회에서 소외되고 거부당한 문제아(?)들을 이곳에서 주님의 사랑으로 치유하며 말씀으로 양육해 세계에 선교사로 보내기 위해 이제 학교 건물을 짓고 내년에 20명의 학생들을 모아 시작할 예정이랍니다. 지난 번 왔을 때 보았던 한국의 청소년들의 눈동자는 우리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와 너무나 똑같아 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어느새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상처를 많이 받고 있었습니다. 이제 주님께서는 이 비전스쿨을 통해 미래의 리더들을 만들어 이사야서 61장 1~3절의 말씀을 이루시길 원하십니다. 전 세계적으로 2세대를 부르시고 마지막 때를 준비시키시는 바쁜 주님의 손길을 봅니다.
화요일 기아대책이 염창동 사무실 1층에 제 1호 “be my friend”와 행복한 나눔 가게를 오픈 했습니다. 그곳에 가서 반갑게 맞이해 주시는 정 장로님을 뵙고 벳지가 장로님의 무릎을 위해 기도하고, 아담하고 예쁜 카페를 둘러보며 맛있는 커피도 대접받고 항상 주 안에서 수고하는 우리 간사님들과 잠시 기쁨의 시간을 누렸습니다. 아파서 걱정했는데 오히려 살이 빠져 예뻐졌다는 모두의 이야기를 들으며 정말 “no pain, no gain”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지요. 그래도 고통으로 인해 살이 빠지는 것은 별로 추천해 드릴 수가 없군요. 하하하. 자원 봉사자로 벳지를 위해 탈의실 커튼을 붙잡고 있는 어린 자매를 보고 이야기 하다 불교 집안에서 혼자 힘든 영적 싸움을 하는 그녀를 위해 함께 기도하며 또 이렇게 귀한 만남을 허락하신 주님의 인도하심에 감사 했습니다.
수요일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고속도로를 열심히 달려 두 가족이 함께 제 아버지가 있는 속초로 향했습니다. 모처럼 학교에서 휴가를 받은 미자 언니와 제 후배 성덕이 그리고 벳지가 간호학과 후배 가족과 함께 1박 2일로 갔지요. 마침 연락이 닿지 않던 오빠에게서 전화가 와 함께 저녁을 먹기로 하고 콘도에서 짐을 푼 후 저는 먼저 오빠를 만나 아버지 집으로 갔습니다. 많은 걱정을 끼쳐 죄송하기만 한대 또 일년도 안된 사이에 많이 수척해지고 기력이 없어지신 아버지의 모습은 또 제 마음을 뭉클하게 했습니다. 이젠 계절마다 기운이 빠진다며 내년이면 팔순이신 아버지의 제 걱정은 그칠 날이 없습니다. 일 년 중 한 두 번을 빼곤 매일 저희 남매를 위해 새벽 기도를 하신다는 아버지의 눈엔 눈물이 그렁 그렁 합니다. 항상 옆에 있어 드리지 못하고 고교 졸업 후 정말 멀리에만 있는 전 불효만 하는 것 같아 죄스럽기만 합니다. 아픈 것도 숨기고 있다가 한국에 오기 며칠 전에 이야기를 꺼낸 것도 걱정하며 잠도 못 주무실 아버지의 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분명 아버지가 제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기회가 보이지 않아 다음 날 아침 식사 후 다시 다른 이들은 통일 전망대에 가고 전 아버지와 드라이브를 하며 데이트를 하다가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답니다. 그 동안 사단은 참 거짓말로 아빠를 많이 아프게 했나 봅니다. 괜한 죄책감을 갖게 하고, 미안한 감정을 부추기고, 눈물을 짓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나의 “아빠, 내가 얼마나 많이 아빠를 사랑하고 자랑스러워 하는지 알지요?”하는 한 마디에 으응 하며 제 손을 두드리실 때 그 동안 보이지 않는 끈에 묶여있던 마음의 한 부분이 풀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나의 아버지는 참 귀하고 용감한 사람입니다. 사랑이 차고 넘쳐서 제 아들 미겔의 마음까지도 녹여버릴 정도니까요. 전 참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제 아버지가 앞으로 아주 아주 오래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제 아이들과 제가 함께 자라는 모습을 늘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금요일 아침 일찍 성남 지부의 홍정자 권사님을 만나 따뜻한 점심을 대접받고 격려와 위로를 받았습니다. 여장부 다우시며 또 한 없이 마음이 따뜻하고 여린 참 아름다운 권사님의 모습은 절 감동시킵니다. 부랴 부랴 기아 대책 사무실을 방문해 간사들과 함께 짧은 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건강 진단 검사결과는 당연히 정상으로 나왔지요. 하나님께서 치유하셨습니다. 모든 중보에 감사 드립니다.
저녁 예배를 통해 새 생명 교회 식구들과 나누며 함께 울고, 웃으며 주님께 영광을 드리고 다음을 기약하며 집에 돌아와 휴식을 취한 후 다음 날 두 번의 아름다운 모임을 통해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며 쓰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했습니다. 가기 전 기도 드렸듯이 일주일 이란 짧은 시간 동안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만나야 할 사람을 만나게 하시고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온두라스로 돌아오는 길은 참 피곤이 더하였습니다. 이틀간 밤새워 와서 휴스턴에서 단기 팀을 만나 함께 온두라스에 도착, 장을 보고 점심을 먹고 다시 팀과 함께 빌라로 향했습니다. 아이들의 기쁨의 함성을 들으며 다신 어디 가지 않도록 꼭 잡고 놓지 않겠다며 날 붙드는 사랑하는 나의 아이들을 보며 마음에 기쁨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너무 보고 싶었다고, 2주일이 꼭 9개월 마냥 너무 길었다고, 이젠 한 식구로 떨어져 있으면 너무나 힘든 지경까지 왔으니 하나님의 사랑이 아이들을 얼마나 바꾸어 놓았는지 또 날 바꾸었는지 알게 되었답니다. 지금까지 제가 아플 때마다 함께 견뎌준 아이들이 참 대견하고 감사합니다. 앞으로 많은 공격이 있겠지만 뒤에서 함께 중보 기도로 저에게 보호막을 쳐 줄 여러분이 계시기에 더욱 감사합니다.
현재 단기 팀과 함께 있기 때문에 이제서야 짬을 내어 메일을 보냅니다. 한국에서 얼굴이나 연락도 못 드리고 온 사랑하는 분들께 죄송한 마음을 전합니다. 응급으로 간 만큼 정말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었고 또 와서도 새벽부터 밤까지 정신 없이 일하다 보니 이렇게 연락이 늦었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짧은 시간 내에 한국에 다녀오고 또 극적으로 치유를 받도록 함께 싸워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평안하세요.
혜영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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